전문연구요원 끝!!!!!


2019년 7월 1일 등록되어서 2022년 7월 1일 소집해제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 신나라!!!!!!!!!!!!! 생각보다 3년 시간 되게 안 가더라구요!

이번 글에서는 간단하게 지난 3년 동안 좋았던 점과 느낀 점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시작

운이 좋게 첫 회사가 좋은 곳이였다

2019년 4월 말 증강현실 분야에 컴퓨터 비전 엔지니어로 V 사에 입사했습니다.

V사는 제가 사회인으로써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고, 또 탄탄한 개발의 기본기를 탑재해준 정말 고마운 곳 입니다. Geometry 기반의 컴퓨터 비전 분야에서 탄탄한 개발 문화를 익히고 싶은 신입 및 주니어 엔지니어 분들께는 제가 종종 언급하며 추천하는 곳 이기도 합니다. V 사에서 어깨 넘어로 익힌 프레임워크 설계, CI 운용방법, 최적화 테크닉, 실험 설계와 같은 부분은 현재까지도 곱씹으면서 발전시키고 있는 방향이고 또 제가 팀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절대로 아무데서나 익힐 수 있는게 아니고, 훌륭하신 팀장님과 CTO님을 봴 수 있는 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운이 따라줬다는 점에 있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물론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여러 업다운도 있었습니다. 전문연구요원이 조금 늦게 등록되어도 입사일부터 카운트가 된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던가, 조금 이상한 과제를 수주했다가 과제 주관사에게 엄청나게 갑질을 당한다던지, HR에서 엔지니어인 제게 독일어 법률 문서를 읽게 하거나 중국 회사와 영어로 전화를 부탁한다던지, 초기 스타트업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직접 겪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가 떠난 후 회사도 스케일 업에 성공했고 현재는 이러한 문제들이 많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실제로 추가 투자 라운드도 성공적으로 클로징 했고, 링크드인으로도 훨씬 긍정적이고 밝은 소식이 자주 보입니다.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도중에 엄청 신나신 표정으로 한순간에 제 자리로 달려오신 전 팀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무슨 좋으신 일이 있으신가 했는데 알고보니 전 팀장님 손에 훈련소 소집 통지서가 있었던 거였을 때 (…) 그리고 심지어 그 표정을 찐으로 순간캡쳐 하신 그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


훈련소

훈련소에서는 몸이 굴려지고 머리가 쉰다

훈련소는 은근히 괜찮았습니다. 카더라로 듣기로는 제가 전문연구요원만 모여서 훈련을 받은 마지막 기수라고 하더군요. 역시 카더라로 듣기로는 공익 친구들과 함께 훈련소를 가게 될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전문연구요원 분들은 힘들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운이 좋았던 편인 것 같습니다.

알고리즘 엔지니어로써 항상 직접 생각하고 직접 결정을 내리고 거기에 책임을 져야했지만, 훈련소에서는 아무 생각도 할 필요도 없이 시키는 것만 잘 따르면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갔었습니다. 평생 해먹을 짓은 아니지만, 마침 회사 업무에서 멘탈이 지쳐갈 때 쯤 한달정도 생각을 그만두니까 정신적으로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였습니다. 물론 몸은 6월 말 - 7월 말 겁나 더울 때 행군하고 그래서 엄청 힘들었지만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게 좋았습니다. 평소에 읽지도 않았던 역사책이나 철학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C++ 책도 읽으려고 가져갔지만 번역이 너무 별로여서 금방 내려놨습니다. 새벽 시간 동안 불침번을 서며 철학 입문서, 나치 독일 관련 책, 헤로도토스 전기를 읽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훈련소에 가기 전에 전문연구요원 선배님들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꿀팁 덕분에 좀 더 편하게 다녀온 것 같습니다.


개인 활동

기술 커뮤니티를 통해 배운게 엄청나게 많다.

회사 밖에서 엄청나게 뭔가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전문연구요원으로써 퇴근 후와 주말의 시간은 온전히 제 것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역보다 무려 2배의 시간을 소모하지만, 이것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전문연구요원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기술 커뮤니티를 통해 딥러닝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었고, SLAM 온라인 스터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의 연구소 과정에 참석해서 의료영상 강의도 이끌고, 오프라인 SLAM 스터디도 할 수 있었구요. 그러던 와중에 SLAM 오픈카톡방도 만들게 되어서 지금은 8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생겼습니다. 이 덕분에 많은 업계 관련자 분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 관련으로 좋은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고, 진짜 친구가 되신 분들도 있구요. 전액 기부 세미나도 할 수 있었는데, 이 세미나 덕분에 현재 저희 CEO님과 CTO님께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직에 성공한 요인에는 이 부분도 무시할 수 없겠죠. 기술 블로그도 운영하면서 노션을 거쳐 지금의 블로그도 있게 되었습니다.

현역으로 갔었으면 1.5년은 먼저 끝나서 더 일찍 더 편한 자유의 몸이 되었을 겁니다. 물론 그 때도 어떻게든 어디서 기회를 잡아서 뭔가를 했었을 것 같지만, 저는 지금 제가 선택한 길과 그 덕분에 좋은 팀에서 멋진 SLAM을 하고 있다는 결과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전문연구요원의 한계

전문연구요원들은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점들이 꽤 있다

그래도 불편한 점이 없진 않았습니다. 사실 엄청 많았죠. 맨날 불평하면서 병무청 욕하고 다녔습니다.

우선 병역업무 관련으로 병무청에 연락하면 기본 30분은 전화기를 붙잡고 기다려야합니다. 그래서 연락이 되어도 담당자는 맨날 연차라고 하구요. 업무 대리를 맡겨둔 사람도 없습니다. 무슨 똥배짱으로 일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문연구요원은 병무청이 정하는대로 민간인이 되고 또 군인이 됩니다. 위험도가 높은 코로나 델타가 떠돌면서 몇천명씩 걸릴 때도, 전문연구요원은 출근 지옥철을 뚫고 유동인구 밀도가 높은 강남으로의 출퇴근 해야합니다. 회사에서 전사 재택을 하겠다고 해도 오피스 셧다운이 아닌 이상 전문연구요원은 무조건 출퇴근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전문연구요원이 재택근무를 한다는 것은 현역 군인 분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문연구요원도 군인이니 근무지에서 근무를 해야한다는게 병무청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백신은 ‘민간인’ 전문연구요원들에게 제공되지 않습니다. 화이자/모더나 대란이 있었을 때 IT 쪽에 밝은 전문연구요원들은 파이썬 스크립트를 사용해서 백신을 먼저 맞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백신을 맞지 않고 코로나에 걸려버리면 병무청이 카카오톡 메세지로 경고한 것 처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거든요. 이 때문에 딥러닝 커뮤니티에서 친해지게 된 분의 결혼식을 참석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책임’을 뭍게 될까봐 축의금만 전달드리게 된 적도 있습니다.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회사에서 제 앞자리, 왼쪽자리, 오른쪽 자리, 뒷자리 분 모두 돌아가면서 한번씩 걸리셨는데, 끝까지 재택을 허용하지 않더라구요. 일주일에 3번을 출근하자마자 보건소로 코 찔리러 가는데도 재택은 안되구요.


그래서 다음 행선지는?

하던거 계속 잘 하자

보통 전문연구요원이 끝나고 나면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봉 재협상에 불발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스타트업이 아닌 대기업에 가겠다는 목적을 가진다던지, 종종 박사를 하러 가겠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니면 그냥 큰 의미 없이 이 참에 다른 필드를 경험해보러 가는 분들도 계시구요.

저는 다른 플랜 없이 같은 곳에 같은 포지션으로, 그대로 하던 일 이어서 하려고 합니다. 지금 포지션에서 Semantic SLAM 엔지니어로써의 기반을 다지고 또 20대 후반으로써 금전적인 기반을 쌓으려고 합니다. 전문연구요원 때랑 다른 점이라고 하면 조금 더 업무 외 적으로 부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물론 전문연구요원 때에도 업무시간 외 부업을 할 수 있었지만, 조건이 엄청 깐깐했고 매번 수입 인증을 해야하는게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였거든요.

민간인으로써의 복귀를 축하해주신 저희 회사와 구성원 분들 감사합니다 ㅎㅎ 선물로 주신 향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이고 향이에요. 열심히 하겠습니닷 (충성)